오늘은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시절의 나의 엄마는 늘 고단하셨다. 6남매를 키우시며 홀시어머니까지 모셔야 했던 젊은 새댁. 시골에서 갓 내려와 세상 물정 모르고 시집와서는,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를 함께 짊어지며 하루하루 버텨내셨던 분이다.
엄마는 재첩국 장사를 하셨다. 아버지가 작은 배를 마련해 오시면, 그 배로 잡아온 재첩을 삶아 양동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재첩국 사이소” 하며 마을을 다니셨다. 그 시절 이야기를 엄마는 가끔 들려주셨다. “내 모진 삶을 살았다. 니는 고생하지 마라.”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쏟아버린 국통, 그날의 눈물
엄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 중에 지금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장면이 있다. 어느 날, 무거운 국통을 머리에 이고 다니시던 중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젖은 길바닥에 발을 헛디뎌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힘들게 준비한 국통이 길 위에 다 쏟아져 버렸다는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살던 엄마였기에 몸이 다친 것보다 국을 잃어버린 게 더 서러우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덩달아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엄마의 무릎은 이미 많이 상해 있었던 듯하다. 평생 무릎이 좋지 않다고 하셨는데, 결국 일흔이 넘으셔서 양쪽 무릎 수술을 받으셨다. 수술 이후에는 예전처럼 아프단 소리를 잘 안 하셨지만, 그 무릎의 세월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자식들을 위해 살았던 한 사람
엄마는 부끄러움도, 고단함도 모두 감내하며 자식들만을 위해 살아오셨다. 무거운 국통을 머리에 이고 장터를 다니며 외롭게 눈물 삼켰던 시간들, 그 모든 것이 결국 우리 자식들을 위한 발걸음이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엄마가 조금만 더 곁에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내 삶의 가장 따뜻한 뿌리였던 엄마를 떠올리면, 그리움이 문득문득 가슴 깊이 밀려든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헌신하셨던 그 세월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이제 나는 딸로서, 엄마의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아 살아가고 싶다. 엄마의 희생과 사랑이 내 삶을 지탱해주는 길잡이였음을, 오늘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겨본다.
다음 글, 길위의 발자국 6에서 이야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