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에게도 드디어 평온이 찾아왔다. 그날 이후로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남아선호사상이 짙던 시절, 딸을 많이 낳은 며느리를 미워한 할아버지가 나를 볼 때마다 며느리를 떠올리며 더 울렸던 것 같다. 그 마음을 알 리 없는 어린 나는 늘 서럽고 울음이 많았다. 하지만 그날을 경계로 나는 울음을 삼키며 조금은 단단해졌던 듯하다.
7살 무렵의 나는 산과 들을 누비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살았다. 봄이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논둑에서 이름 모를 노란 야생화를 꺾었고, 여름이면 매미 울음소리 가득한 정자나무 아래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수박을 나눠 먹곤 했다. 우리 집은 수박 농사를 크게 지었기에, 원두막에서 땀이 뻘뻘 날 때까지 수박을 먹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가을이면 곱게 물든 단풍잎을 주워 모았고, 겨울에는 손수 만든 썰매를 끌고 개울 얼음 위를 미끄러지며 놀았다. 지금껏 살아오며 힘든 날이 있어도 이런 어린 시절의 추억은 종종 내 마음을 감성에 젖게 한다. 문득 요즘 아이들은 나처럼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추억을 품고 살아갈까, 하는 걱정을 해보기도 한다.
1970년,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지금의 초등학교다. 우리 마을은 깊은 산골이라 학교까지 십 리 길, 약 4km를 걸어서 다녔다. 그 짧은 다리로 걸어 다녔을 나를 떠올리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입학식 날, 가슴에는 손수건과 이름표를 달았다. 그 시절에는 아이들 누구나 콧물이 많았다. 환경 탓이었는지 항상 코를 훌쩍였고, 선생님은 손수건으로 아이들의 코를 닦아주셨다. 그 손수건은 말 그대로 필수품이었다.
등굣길은 두려움과 호기심이 함께였다. 친구와 함께 걸을 때는 덜 무서웠지만, 청소 당번이라 늦게 하교하는 날이면 홀로 산길을 걸어야 했다. 길은 비포장이었고, 굽이굽이 오솔길 양옆에는 공동묘지가 줄지어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공동묘지는 두려운 곳이었다.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친구들끼리 하곤 했기에, 겁에 질려 울며 달리던 날이 많았다. 그렇게 울며 마을 입구에 도착하면 동네 사람들은 “또 울보가 운다” 하며 핀잔을 주었다. 위로보다는 웃음거리가 되었던 그 시절, 다들 먹고 살기 바빠 남의 아이 울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시 우리 집은 산을 끼고 있어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또 벙어리 아저씨가 집안일을 거들어 주셨기에 아이였던 나는 농사일을 직접 맡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언니 오빠들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동생을 업어 돌보거나 소먹이 풀을 베어오고, 나무를 해서 땔감을 쌓아야 했다. 모두가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바쁘게 살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는 가끔 귀한 식빵을 배급받았다. 종례 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눈을 감으라” 하시고 한 조각씩 손에 쥐어주셨다. 그때 맡았던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향,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 귀한 빵을 혼자 먹지 않고 동생과 나누고 싶어 귀퉁이만 살짝 맛본 뒤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빵을 노린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내가 다니는 오솔길을 막아섰다. 가방을 탈탈 털어 빵을 빼앗아 가버리곤 했다. 지금으로 치면 ‘학교폭력’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모두가 가난했기에 이해하려 했지만, 억울했던 감정은 오래 남았다. 선생님 이름은 희미해져도 그 남자아이의 이름만은 지금까지 선명히 기억나는 걸 보면 당시의 충격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 울음을 삼켰다. 마을 어른들은 여전히 “울보 또 운다” 하며 웃었지만, 왜 우는지 물어주는 이는 없었다. 15채 남짓의 작은 집성촌, 친구라 해도 몇 명뿐인 좁은 세상에서 나는 그렇게 울보로 낙인찍힌 채 어린 시절을 살아갔다. 하지만 그 울음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너무 바빴다. 하루 먹을 양식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시절이었으니 누가 어린아이의 속내까지 살펴줄 여유가 있었겠는가. 지금 풍족하게 살아가는 세대는 아마도 그 시절의 결핍과 서러움을 쉽게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울음을 벗 삼아, 작은 빵 한 조각에 희망을 품으며, 그렇게 매일을 살아냈다.
“그 시절의 울음은 서러움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단단해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 길 위의 발자국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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