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조선을 뒤흔든 임진왜란의 포성이 울릴 무렵, 경남 의령 낙동강 변에 붉은 옷을 입은 한 사내가 등장한다. 백마에 올라 붉은 비단 갑옷을 입고 나타난 그는, 단숨에 왜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사람들은 그를 ‘홍의장군’이라 불렀고, 그의 이름은 곧 의병의 상징이 되었다. 바로 곽재우 장군이다.

곽재우는 155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유학자 조식의 제자로 학문을 익혔다. 문과에 급제했지만 왕의 눈밖에 나 벼슬길을 접고 은거하다, 왜란이 터지자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 그의 출정은 단순한 무장봉기가 아니었다. 의령 유곡면 세간리에서 시작된 이 움직임은 조선 최초의 의병이라 불릴 만큼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곽재우는 붉은 복장을 하고 싸웠기에 ‘천강홍의장군(하늘에서 내린 붉은 장수)’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그는 정암진 전투를 비롯해 낙동강 일대에서 수차례 전공을 세웠으며, 유격전과 매복전을 통해 왜군을 농락했다. 그의 이름만 들어도 적들이 물러났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의령에는 곽재우와 관련된 전설이 아직도 살아 숨 쉰다. 대표적인 것이 ‘현고수’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에 북을 매달아 의병을 불렀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금도 그 나무 아래서는 매년 의병제를 지내며 그 정신을 기리고 있다.
또한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합강 권역’에는 가을이면 붉은 댑싸리로 물든 장관이 펼쳐진다. 이 경관은 마치 홍의장군의 붉은 기운이 낙동강을 다시 물들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의령군은 이를 ‘의병의 숲’으로 조성해 매년 축제를 열고 있으며, 곽재우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곽재우는 전란 후 벼슬을 몇 차례 제수받았지만 대부분 사양하고 은둔하며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의 생애는 단순한 무장이 아닌 ‘실천하는 선비’의 전형이자, 민중의 힘으로 나라를 지킨 의병정신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의령은 그를 기리며 ‘의병의 고장’으로 불린다. 낙동강의 붉은 물결과 현고수, 홍의장군 축제는 모두 곽재우에서 시작된 전설이다. 한 사람의 결단이 지역을 상징으로 만들고, 지금도 수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