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끝난 뒤의 주말이었다.
마음 한켠이 허전해질 즈음, 오래전 은혜를 입었던 지인을 찾아뵙기로 했다. 지금은 남해로 내려가 바닷가 펜션에서 조용히 지내고 계신다. 전화로 안부를 전하니 반가워하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남편과 함께 여행 가는 마음으로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점심 무렵 남해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맡는 바다 냄새, 그리고 예전에 감탄하며 먹었던 자연산 회가 떠올랐다. “그 집 아직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자주 가던 횟집으로 향했다. 명절 끝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고, 가게 안도 조용했다.
우리는 회맛을 잘 모르니 가장 맛있는 것으로 추천해달라고 했다. 사장님은 무심한 표정으로 “제가 알아서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단골이라 알아보신 줄 알았다. 괜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막상 나온 회는 예전의 그 꼬들하고 탱탱한 식감이 아니었다.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고개가 갸웃해졌다. 세월이 변한 걸까, 내 입맛이 달라진 걸까. 아니면 명절이 지나서였을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몇 점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 매운탕을 부탁했다. 남은 회는 아깝다는 생각에 삶아 먹었다. 부산에서 팔딱거리던 활어회를 먹다가 와서 그런 걸까, 수족관에 며칠 머물다 나온 듯한 맛이었다.
더 속상했던 건, 그날이 손님을 대접하러 간 자리였다는 사실이다. 혹시 나만 그렇게 느낀 걸까.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도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운하다는 표현 한마디 못한 채 돌아서는 내 모습이 더 답답했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왜 친절하고 참는 사람이 더 손해를 보는 걸까. 까다롭게 말해야만 더 신경 써 주는 세상일까. 말 못 하고 우유부단한, 내성적인 나는 늘 집에 돌아와서야 끙끙 앓는다. 그 자리에서는 웃고, 돌아와서는 후회한다.
그날의 점심은 단순히 맛이 없어서 억울했던 게 아니다.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나 자신이 더 원망스러웠다.
앞으로는 싫으면 싫다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말하며 살아가고 싶다. 부드러움이 약함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친절함이 당연함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그날 남해의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지만, 내 마음은 한동안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조금은 더 단단해지기로.
조금은 더 솔직해지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