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참 억척스러운 분이었습니다. 한랑이셨던 아버지와 함께 사시며 봇다리 장사로 6남매를 키워내셨죠.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산 적 없는 분이셨고, 가족을 위해라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분이었습니다.
나이 들어 경도치매 진단을 받으시고, 뇌경색까지 겹쳐 몸과 마음이 함께 약해지기 시작했을 때도, 저는 그저 ‘엄마는 강하시니까’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끔 정신을 놓고 새벽에 밖으로 나가려 하시기도 했고, 실금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으시는 날도 많았습니다. 팬티형 기저귀를 착용하시고, 식사 때마다 틀이 불편하셔서 반찬은 일일이 잘게 다져 드려야 했습니다. 목욕을 도와드릴 때면 짜증을 내시고, 저를 향해 화를 내실 때면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함께 보냈던 2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점점 작아지고 여려지던 엄마. 억척스럽던 그 분이 어린아이처럼 제게 의지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엄마가 자꾸 집을 나가시려 했습니다. “시장 가야지”, “집에 가야 한다”며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들고 서 계셨고, 밤낮도 구분하지 못하실 때가 많아졌습니다. 결국 저는 마음 아프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제 손으로 더 이상 안전하게 돌볼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거든요.
요양원으로 가신 엄마는 처음엔 많이 낯설어하셨습니다. 눈빛엔 서운함과 두려움이 함께 섞여 있었고, 그 모습을 보는 제 마음은 하루하루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6개월, 엄마는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그 마지막을 제 품에서 지켜드리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그걸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조금 더 버텼다면 어땠을까.”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더라면, 덜 외롭지 않으셨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를 떠나보낸 후, 가끔 무서워집니다. 치매가 유전된다고 하니까요. 건강했던 엄마, 그리고 아버지까지도 결국 치매로 돌아가신 걸 생각하면 저도 어느 날 그 길을 걷게 될까 봐 겁이 납니다. 그래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며 뇌를 자극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 노력의 하나입니다.
엄마는 제게 많은 걸 주셨습니다. 사랑, 책임감, 가족의 의미. 그리고 살아 있다는 건 결국 누군가와의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는 걸. 저는 끝까지 그 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엄마,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너무 고마워요. 정말,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