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사진을 보내왔다.
그 속에는 손주가 겨울 김장을 준비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처음엔 웃음이 났다. 고사리같은 작은 손으로 배추를 뽑고, 무를 캐고, 조심스럽게 절이고, 매운 양념을 배추 잎에 펴 바르는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아직 다섯 살.
세상이 신기하고 모든 게 처음인 아이가 그 작은 두 손으로 계절의 일을 배우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이 아이는 이 하루를 기억할 수 있을까?
찬 바람 속 흙 냄새, 손끝 시린 배추의 촉감, 가족과 함께 웃던 소리들… 다섯 살의 기억이란 건 얼마나 오래 남을까 싶었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릴 적, 봄이면 어머니는 내 손에 쑥바구니 하나를 쥐어주셨다.
“다녀오너라.”
들판에 나가 쑥을 캐던 그 시간. 흙 냄새와 햇살, 바람, 그리고 엄마가 부르던 목소리까지…
기억은 오래됐지만, 그 감각은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손주도 그러하겠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어느 겨울날 문득 김장 냄새를 맡으면, 손끝으로 느꼈던 그 따뜻함과 가족들의 웃음이 마음속 어딘가에서 피어오르겠지.

자연 속에서 계절을 배우고, 손으로 직접 만져보며 만들어가는 하루.
그 하루가 한 아이의 마음속에 고요하고 깊은 온기로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계절의 온도와 감정을 전해주기 위해 애써주시는 선생님들.
매 계절마다 새로운 체험을 기획하고, 아이들이 웃으며 참여할 수 있도록 세심히 준비해주시는 그 마음이 고맙고 따뜻하다.
언제부턴가 김장은 힘들고 번거로운 일처럼 여겨졌지만,
이 작은 손 하나 덕분에 다시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김치는 겨울을 나기 위한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시간과 웃음, 그리고 사랑이 함께 담겨 있었다.
올해 겨울, 나도 김장을 하며 이 하루를 떠올릴 것이다.
사진 속 손주처럼, 나도 마음으로 다시 김장을 배우게 될 것 같다.
작은 손이 만들어낸 큰 추억.
그 하루는 나에게도 따뜻한 선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