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남편과 함께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패키지로 떠난 9박 11일, 걱정 없이 식사도 숙소도 완벽했던 여행이었고,
무엇보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이 여행의 진짜 선물이었어요.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의 저녁 식사,
그날은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을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식사하게 된 분당의 부부는 딸이 둘 있다고 하셨어요.
큰딸은 미국에, 작은딸은 서울에 살고 있고,
그날따라 유난히도 가족 이야기가 깊게 오갔죠.
그러던 중 화제가 된 영화 한 편.
거기서 나오는 대사 “폭싹 속았수다”,
처음 들으면 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 말의 뜻을 아신 그 부부의 남편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그게 그런 뜻인 줄, 이제야 알았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어요’…
그렇게 따뜻한 말이었네요.”
순간, 그분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고,
딸을 둘 키운 아빠로서
그 한마디에 담긴 마음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지셨던 거죠.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조용히 감정에 젖은 채로 말씀하셨어요.
“딸이라는 존재는 늘 품 안에 있을 줄 알았는데,
커서 각자의 삶을 살고 나면
남는 건 그리움과 미안함뿐인 것 같아요.
그동안 한 번도 ‘수고했다’는 말,
제대로 해준 적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하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딸로 살아온 제 마음에도 잔잔한 파장이 일었습니다.
우리 아빠도 그랬겠지요.
딸을 위해 무던히 살아오시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
품은 감정들,
그리고 말없이 흘린 수고의 시간들.
그날 식탁 위엔 눈물과 휴지가 함께했고,
웃음과 울음이 엉킨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행지 한복판에서 낯선 이들과 그렇게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했고, 또 따뜻했습니다.
이번 유럽 여행은 날씨도 좋았고,
가는 곳마다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제게 진짜 인생 여행이 된 이유는
그곳에서 사람의 진심을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시간을 남편과 함께 걸을 수 있어서
더 의미 있었어요.
유럽의 오래된 돌바닥을 함께 밟으며,
우리는 인생의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한 듯했습니다.
돌아와서도 그날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말을 떠올려봅니다.
“폭싹 속았수다.”
이젠 그 말이
단지 ‘수고했다’가 아니라,
“너의 마음을 이제야 알아줬다”는 진심으로 들립니다.
📝 여행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때론 한 문장이,
한마디 말이,
누군가의 인생을 위로하죠.
그날의 “폭싹 속았수다”는
제 인생 최고의 대사로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