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요양병원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 있는 짧은 안내글을 읽고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그 글귀는 단순한 안내문이 아니라, 삶의 깊은 진실을 담고 있었습니다.
아이와 부모, 같은 반복의 순간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를 떠올려 봅니다. 아기가 처음으로 말을 배울 무렵, 엄마라는 말을 듣고 싶어 수없이 “엄마”라는 단어를 반복합니다. 부모의 마음은 간절합니다. 마침내 아이가 “엄마”라는 소리를 내뱉는 순간,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아이에게 “오이”라는 단어를 가르칠 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가 그 단어를 입 밖에 꺼냈을 때, 잘했다고 칭찬하고 다독이며 또 다른 단어를 가르쳤습니다. 부모는 그렇게 끝없는 반복 속에서 인내하며 아이를 길러냅니다.
그러나 부모님께는…
반대로, 나이 들어 기억이 희미해진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자주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얘야, 오늘이 몇 일이냐?”
처음 한두 번은 곱게 대답합니다. 그러나 세 번, 네 번이 되면 자식들은 종종 짜증을 냅니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돼?”
그 순간, 마음 한켠이 뜨끔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가 어릴 적 같은 질문을 열 번, 스무 번 물어도 귀찮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기특하다며 부연설명까지 곁들여가며 친절히 대답해주셨지요. 그렇게 우리를 키워내셨습니다.
문득 찾아온 반성
그 안내문을 읽으며 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힘없이 기울어져 가는 부모님께 귀찮은 듯한 태도를 보인 적은 없었을까. 나도 모르게 상처를 드린 적은 없었을까.
기억장애가 있었던 친정어머니와 함께하며, 최선을 다해 모셨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어머님의 은혜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과 바다보다 넓다
“높은 하늘보다, 넓은 바다보다 더 크고 깊은 것이 어버이의 은혜”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그 말 그대로입니다. 이제는 부모님이 곁에 계시지 않기에, 그 은혜에 보답할 기회조차 사라졌음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마무리하며
엘리베이터에 붙은 그 짧은 안내글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 우리가 보여주던 무한 반복의 인내심을, 부모님께도 똑같이 드려야 한다는 것.
그 단순한 진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부모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다정하고 인내심 많은 교사였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역할을 이어받아, 부모님께 따뜻하고 자비로운 답을 드려야 할 차례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