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주가 따로 있을까?”
“사람마다 타고난 팔자가 정해져 있을까?”
“이름에 따라 운명이 바뀌기도 할까?”
평소에는 그런 것을 크게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힘들 때면 자꾸 그런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진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자식 걱정이 많을 때, 건강이나 돈 문제로 마음이 무거울 때면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진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내 인생에 정해진 길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아니다. 손자가 태어날 때도 문득 그런 마음이 들었다. “태어나는 시간도 중요하다는데, 난시를 보고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며느리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것을 크게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괜히 머쓱했다. 나 역시 사주나 팔자를 무조건 믿는 사람은 아닌데, 그래도 막상 가족의 일, 특히 손주가 태어나는 일 앞에서는 좋은 것만 골라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사주팔자라는 말은 참 묘하다.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남아 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운이 좋았다”고 말하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내 팔자가 이런가 보다” 하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순간을 만나기 때문이다. 태어난 집안, 부모, 건강, 시대, 만나는 사람들까지 내가 고를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 부분을 옛사람들은 팔자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보니 타고난 조건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운을 타고났다고 해도 게으르고 함부로 살면 좋은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 반대로 시작은 힘들었어도 꾸준히 참고 견디며 자기 길을 만든 사람들은 결국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간다. 사람의 인생은 한 번에 확 바뀌기보다, 매일의 작은 선택이 쌓이면서 달라지는 경우가 더 많다.
말 한마디를 참는 것, 하루에 조금이라도 배우는 것, 몸을 돌보는 것, 나쁜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 것,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당장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삶의 모양을 바꾼다. 결국 운명이라는 것도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반복해서 선택한 것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결과일 수 있다.
물론 사주를 보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마음이 너무 답답할 때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내 성향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다 정해놓은 답안지라고 믿어버리면 안 된다. “나는 원래 팔자가 안 좋아”라고 단정하는 순간, 바꿀 수 있는 것들마저 포기하게 된다.
살면서 중요한 것은 내게 어떤 팔자가 주어졌는지보다,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다. 오늘 내가 하는 생각, 말, 행동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타고난 것이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늦게 시작해도 괜찮다. 삶은 생각보다 길고,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변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믿고 싶다.
타고난 사주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센 것은 내가 매일 고르는 선택이고, 포기하지 않고 반복하는 행동이다.
팔자가 인생의 시작점이라면, 선택과 행동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다.
결국 내 삶을 가장 많이 바꾸는 사람은 사주를 봐주는 누군가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