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으로 육아를 배우던 수다쟁이 엄마
결혼 전, 나는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정말 훌륭하게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이다. 휴대폰도 없고 지금처럼 정보가 넘치지도 않던 시절, 육아에 관해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전문서적을 펼쳤다. 책장을 넘기며 앞으로 만날 아이를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어린 시절의 발달이 중요하다는 말을 마음에 두었다. 아직 말을 못 하는 아이에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나는 그렇게 아이와 대화하는 수다쟁이 엄마였다.
그 아이들은 자라 각자의 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나름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고맙고 흐뭇하다.
그런데 손자가 태어나고부터, 할머니인 나는 다시 육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성장 동영상을 보면서도 생각한다. 저 아이들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텐데.
정보가 넘칠수록 다시 생각나는 기본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와 여러 콘텐츠를 일찍 만난다. 내가 보기에는 더 자극적인 영상을 찾거나 화면에 한껏 몰입하는 듯한 모습도 있다. 물론 모든 아이가 같지는 않다. 이것은 손자들을 생각하며 느끼는 나의 걱정이다.
최근 텔레비전에서 한 공학박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 기억에는 휴대폰과 텔레비전을 보는 대신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라는 취지였다. 대화하며 상상하는 과정의 중요성도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다만 창의력이 오직 대화에서만 생긴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는 놀이와 그림, 음악, 몸의 움직임과 새로운 경험 속에서도 생각을 펼칠 수 있다.
AI까지 등장해 정보를 쉽게 찾아주는 시대다. 그렇다고 정보를 이해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힘까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다음 배움을 받아들일 기본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유아기에는 무엇을 소중하게 키워주어야 할까.

유아기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내가 먼저 지켜주고 싶은 것은 사랑받는다는 안정감 속에서, 충분히 놀고 사람과 말을 주고받는 일상이다. 특별한 교재 하나보다 하루를 어떻게 함께 보내는지부터 돌아보고 싶다.
교육부·보건복지부의 「2019 개정 누리과정」 해설서도 신체운동·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라는 다섯 영역을 다룬다. 한글과 수학만으로 유아교육을 생각하기보다, 아이의 생활 전체를 바라보게 하는 구성이다.[1]
1.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유니세프는 보호자가 사랑과 위로, 관심을 제공하는 것이 아이의 정서·사회적 능력을 키우는 바탕이라고 설명한다.[4]
나는 그 시작이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말에 있다고 생각한다.
“속상했구나.”
“잘 안 돼서 화가 났구나.”
“엄마가 옆에 있어. 다시 해보자.”
마음을 받아준다는 것이 모든 행동을 허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화가 날 수는 있지만 친구를 때리면 안 돼”처럼, 감정은 이해하되 지켜야 할 선은 알려주고 싶다.
2. 대화는 많이 가르치는 것보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대화라고 하면 어른이 설명을 많이 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아이의 말과 표정에 관심을 두고, 대답할 시간을 기다려주는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
“왜 그 색을 골랐어?”
“이 상자가 집이 된다면 누가 살까?”
“오늘 제일 재미있었던 건 뭐였어?”
정답을 확인하는 질문만 하기보다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서 묻고 싶다. 말이 짧거나 아직 서툴더라도 대신 결론을 내리지 않고 기다려주고 싶다.
3. 놀이는 공부를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유니세프는 놀이를 어린아이가 세상을 배우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놀이 속에서 운동·인지·사회·정서적 능력을 함께 사용하고 키운다는 것이다.[4]
블록이 무너졌을 때 다시 쌓아보기, 가게놀이에서 물건을 사고팔기, 친구와 차례를 정하기. 어른 눈에는 단순한 놀이여도 아이에게는 생각하고 시도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비싼 장난감이 아니어도 좋겠다. 종이상자, 물, 흙, 나뭇잎처럼 주변의 재료를 안전하게 만져보고, 밖에서 몸을 움직일 여유를 주고 싶다. 놀이의 결과를 잘 만들어내는 것보다 그 과정을 즐겼는지 먼저 보고 싶다.
4. 책은 시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즐기는 이야기다
내가 아이를 키울 때는 책을 많이 읽게 하는 것이 좋은 교육의 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권수만 늘리기보다 책과 편안하게 친해지게 하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유니세프도 아이가 글을 읽기 전부터 책을 좋아할 수 있으며, 함께 읽으면서 그림 속 인물과 사물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안내한다.[2]
“토끼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다음에는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아이가 같은 책을 다시 골라도 좋겠다. 피곤한 날에는 짧게 읽고, 줄거리를 맞히게 하느라 즐거움을 빼앗지 않았으면 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반드시 영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야기를 즐기고 의미를 생각하는 경험이다.
5. 생활습관과 화면 밖의 시간을 지켜준다
잠들고 일어나는 리듬, 식사, 손 씻기, 정리하기 같은 일도 교육 밖에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잘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어른과 함께 조금씩 해보면 좋겠다.
휴대폰과 텔레비전도 모든 콘텐츠가 나쁘다는 결론으로 묶고 싶지는 않다. 다만 화면 때문에 잠과 놀이, 책과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밀려나지는 않는지 살피고 싶다.
미국소아과학회의 부모 안내는 식탁과 잠들기 전처럼 화면 없이 지낼 시간을 정하고, 자동재생을 끄고, 적절한 콘텐츠를 고르며, 독서와 바깥놀이 등 다른 활동의 자리를 남겨두도록 권한다. 어른 자신도 가족의 미디어 계획에 포함하라고 안내한다.[3]
아이에게만 휴대폰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기 전에, 나도 아이와 이야기할 때 화면을 내려놓아야겠다. 이용 방법은 아이의 연령과 발달에 맞게 정하되, 부모와 합의한 원칙을 할머니도 함께 지켜주고 싶다.
초등학교에 가기 전,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까
입학이 가까워지면 한글은 얼마나 알아야 하는지, 계산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마음이 바빠진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은 일상 속 준비도 함께 살펴보고 싶다. 이것은 합격 기준이나 모든 아이가 입학 전에 완성해야 할 목록이 아니라, 어른의 도움을 받으며 연습해볼 방향이다.
- 듣고 말하기: 짧은 안내를 듣고 해보기. 이해하지 못했을 때 “다시 말씀해주세요”라고 말해보기.
- 도움을 청하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아파요”, “도와주세요”처럼 자기 필요를 표현해보기.
- 기본 생활: 손 씻기, 옷과 신발 챙기기, 사용한 물건 정리하기를 함께 해보기. 어려운 부분은 계속 도움받아도 괜찮다.
- 다른 사람과 지내기: 차례를 기다리고, 친구의 말을 듣고, 갈등이 생기면 어른에게 알려보기.
- 배움에 친숙해지기: 그림책을 즐기고 이름의 글자에 관심을 갖기. 간식을 나누며 수를 세거나 크기와 모양을 비교해보기.
- 다시 시도하기: 틀렸을 때 혼내기보다 “다른 방법으로 해볼까?” 하고 함께 찾아보기.
한글과 수를 배우는 것 자체를 미룰 필요는 없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면 즐겁게 만나게 해주고 싶다. 다만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불안 때문에 놀이와 휴식, 배움의 즐거움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발달 속도나 어려움이 걱정될 때는 혼자 비교하며 불안해하기보다 유치원·어린이집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하면 소아청소년과 등 전문가와 상의하는 편이 좋겠다.

교육의 기본은 같아도 아이의 속도는 다르다
생각할수록 모든 아이에게 똑같이 맞는 하나의 정답은 없는 듯하다. 타고난 성품과 소질, 관심과 성장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의 부모에게는 각자의 교육관이 있다. 할머니인 내가 걱정된다는 이유만으로 그 선택을 평가하거나 내 방식을 앞세우고 싶지는 않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조심스럽게 묻고, 도움이 되는 정보를 함께 살펴보고 싶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의외로 소박하다. 함께 책을 펼치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산책길에서 나뭇잎 하나를 같이 바라보는 일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랑받는다는 마음과 궁금해하는 힘, 듣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힘은 오래 남을 것이다.
나는 손자들이 남보다 빨리 배우기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자기 속도로 배우면서, 모르는 것을 물을 수 있고, 실패해도 다시 해볼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
오래전 수다쟁이 엄마였던 나는, 이제 손자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 본문 그림은 글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AI로 만든 일러스트이며, 실제 가족 사진이 아닙니다.
참고한 공식 안내
[1] 교육부·보건복지부: 2019 개정 누리과정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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