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식에 담겨 온 며느리의 마음
조용하고 여유로운 오후다.
추억의 팝송을 들으며, 이번 추석에 아들 집에서 가져온 쫀드기를 먹는다. 오랜만에 누리는 한가로움 속에서 명절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른다.
이 간식은 아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며 며느리가 챙겨준 것이다.
“맛있나 봐요. 심심할 때 드세요.”
그렇게 건네준 간식을 오늘 꺼내 먹는다. 달콤한 간식보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며느리의 그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 심심할 때 먹으라고 챙겨준 마음이 참 예뻤다. 작은 간식 하나에 담긴 다정함이 조용한 오후를 따뜻하게 해준다.
달라진 가족의 모습 속에서
주위 친구들을 보면 자녀들은 결혼해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우리도 어느새 예순을 넘긴 어른으로 자리하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면 자식 자랑을 하기도 하고, 자식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자녀들은 독립했지만, 부모의 마음에는 여전히 자식들이 자리하고 있다.
요즘은 아들 집이라고 해도 부모가 마음대로 찾아가기보다, 먼저 방문해도 괜찮은지 물어야 하는 때가 되었다고 느낀다. 손자가 보고 싶어도 허락 없이는 못 본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기도 한다. 내게는 아직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변화다.
그렇다고 자식들의 생활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각자의 살림과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 다만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자식과 손자를 보고 싶은 부모 마음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들 집에서 며칠이나 명절을 보내고 온 나는 ‘눈치 없는 시어머니’였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적고 싶은 것은 다른 집의 사정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우리 부부에게 따뜻한 명절을 선물해 준 자식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함께한 추석, 당연하지 않은 따뜻함
이번 추석에 우리 부부는 아들 집에 머물며 손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며느리가 준비한 따뜻한 음식을 먹고,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냈다.
나는 즐겁게 지내고 왔지만, 우리 부부를 맞아준 아들과 며느리에게는 그만큼의 수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명절 잘 보내고 왔다”는 말 뒤에 “참 고맙다”는 말을 꼭 덧붙이고 싶다.
우리 아들과 며느리는 아직 우리와 가족을 생각하는 정서가 맞는가 보다. 이번 명절을 보내며 나는 그렇게 느꼈다.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도, 따뜻한 음식도, 돌아오는 길에 챙겨준 간식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 한다.

고맙다, 그리고 너희의 행복을 응원한다
즐거운 명절을 보내고 왔는데도 부모 마음은 다시 걱정으로 향한다. 이렇게 팍팍한 세상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꾸려가는 이 아이들이 혹시 힘들지는 않을까. 기쁜 마음 한쪽에는 늘 그런 걱정이 남는다.
심성이 착한 아들과 며느리가 큰 어려움 없이 평안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예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너희가, 그 마음을 지키느라 너무 지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을 위해 애쓰는 만큼 너희 자신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들아, 며느리야.
덕분에 우리 부부가 따뜻하고 즐거운 추석을 보내고 왔다. 참 고맙다.
부모에게 잘해준 고마움도 크지만, 내가 마음속으로 가장 바라는 것은 너희가 행복하게 사는 일이다. 너희의 하루에 웃을 일이 많고, 걱정보다 평안이 오래 머물기를 오늘도 조용히 기도한다.
추억의 팝송이 흐르는 오후, 며느리가 챙겨준 간식을 먹으며 이 마음을 적는다.
간식은 조금씩 줄어들어도, 그 안에 담겨 온 따뜻한 마음은 오래 남을 것 같다.
※ 본문의 그림은 글의 이해와 분위기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삽화이며, 실제 가족사진이나 실제 계약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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