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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발자국 2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에게도 드디어 평온이 찾아왔다. 그날 이후로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남아선호사상이 짙던 시절, 딸을 많이 낳은 며느리를 미워한 할아버지가 나를 볼 때마다 며느리를 떠올리며 더 울렸던 것 같다. 그 마음을 알 리 없는 어린 나는 늘 서럽고 울음이 많았다. 하지만 그날을 경계로 나는 울음을 삼키며 조금은 단단해졌던 듯하다. 7살 무렵의 나는 산과 들을 누비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살았다. 봄이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논둑에서 이름 모를 노란 야생화를 꺾었고, 여름이면 매미 울음소리 가득한 정자나무 아래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수박을 나눠 먹곤 했다. 우리 집은 수박 농사를 크게 지었기에, 원두막에서 땀이 뻘뻘 날 때까지 수박을 먹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가을.. 2025. 9. 5.
길 위의 발자국 1 나는 경남 합천군의 깊은 골짜기에서 태어났다.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농사일을 도와주던 벙어리 아저씨가 함께 살았다. 옛날에는 그런 일을 ‘머슴’이라 불렀다.두 집 살림의 그림자할아버지는 양반이라 불리던 분이셨다. 우리 집에도 할머니가 계셨지만, 산 너머 작은집에는 ‘작은할머니’라는 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할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듯하다. 할아버지는 주로 우리 집에서 머무르셨고, 그 일 때문에인지 할머니는 늘 속을 앓으셨다. 기억 속 할머니는 늘 소다를 드시며 위통을 달래셨는데, 지금 와서 추측하건대 신경성 위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모진 세월을 할머니는 어떻게 견뎌내셨을까.눈물 많던 아이그 시절, 나는 여섯 살쯤이었다. 늘 눈물과 콧물에 젖어 있던 아이. 여름이면 모기.. 2025. 9. 4.
🏥 요양병원 안내글 속에서 발견한 마음의 울림 얼마 전, 어느 요양병원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 있는 짧은 안내글을 읽고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그 글귀는 단순한 안내문이 아니라, 삶의 깊은 진실을 담고 있었습니다.아이와 부모, 같은 반복의 순간들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를 떠올려 봅니다. 아기가 처음으로 말을 배울 무렵, 엄마라는 말을 듣고 싶어 수없이 “엄마”라는 단어를 반복합니다. 부모의 마음은 간절합니다. 마침내 아이가 “엄마”라는 소리를 내뱉는 순간,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저 역시 아이에게 “오이”라는 단어를 가르칠 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가 그 단어를 입 밖에 꺼냈을 때, 잘했다고 칭찬하고 다독이며 또 다른 단어를 가르쳤습니다. 부모는 그렇게 끝없는 반복 속에서 인내하며 아이를 길러.. 2025. 9. 4.
오늘도 따뜻하게, 어르신 유치원의 하루 풍경 나이가 들면 다시 아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르신 유치원의 하루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걸 절로 느끼게 됩니다.아침 일찍, 공부하러 간다고 단정하게 옷차림을 하고 등원(?) 준비를 하시는 어르신들. 마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손주를 보는 듯한 모습입니다. 어떤 분은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활짝 웃으며 반겨 주시고, 어떤 분은 “니는 언제 왔노?” 하며 기억을 잃어가는 세 살배기 같은 눈빛을 보이기도 하십니다.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어르신 유치원의 가장 큰 두려움은 기억이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방금 대화를 나누고도 5분 뒤면 “몰라”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지는 아이들과 달리, 어르신들의 학습은 마치 꺼져가는 불빛을 붙잡는 듯합니다. 그 모습이 애.. 2025.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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